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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소개>한양으로 가는 관문, 한양관문길
admin - 2016.05.20
조회 836
경기옛길 청년기자단 명예기자 이주영_오늘은 경기옛길 삼남길 1구간 한양관문길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한양관문길은 남
난이도는 하중이라고 하니 가볍게 산책 겸 다닐 수 있겠어요!! 하지만 출발하기 전 몸풀기와 또 도보여행은 혼자 다니는 것보단 여럿이서 다니는 것이 좋은 것 다 아시죠? 태령에서 시작합니다.
남태령역을 나와 남태령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오면 남태령 옛길 표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천성당을 지나 만날 수 있는 온온사는 정조가 능 행차 당시에 묵어간 곳이기도 합니다. 온온사를 지나면 관악산 등산로의 입구이기도 한 과천향교를 지나게 됩니다. 과천시청과 정부 과천 청사를 지나면 물맛이 훌륭하다 하여 정조가 벼슬을 내렸다는 가자 우물을 만날 수 있고, 여기서 좀 더 길을 재촉하면 인덕원 옛 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양관문길의 지도를 살펴볼까요?
한양관문길 주변 볼거리

1. 온온사(穩穩舍)
조선의 제22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가는 길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온온사’라는 이름은 정조가 이곳에서 매우 편안하게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판의 글씨를 정조가 직접 썼다고 합니다.

2. 과천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과천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이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내삼문(內三門)·외삼문 등으로 되어 있으며,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과천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이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내삼문(內三門)·외삼문 등으로 되어 있으며,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3. 김약로 묘
본관 청풍(淸風)인 김약로(金若魯)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749년(영조 49) 좌의정에 오른 인물입니다.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능 행차를 갈 때 처음에는 남태령을 넘어가는 과천 길을 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뒤에 원래의 능 행차를 길을 바꾸어 시흥을 통해 수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영의정 김상로의 형 김약로의 무덤이 갈현동 찬 우물 마을에 있어 그 앞을 지나가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4. 가자우물(찬우물)
정조가 능 행차를 가던 중 이 부근에서 갈증을 느끼자 한 신하가 이 우물물을 떠다 바쳤다고 합니다. 물을 마신 정조는 물맛이 유난히 좋다고 하면서 이 우물에 당상(堂上)의 품계를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이 우물은 ‘가자우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물맛이 좋고 차다고 해서 ‘찬우물’이라고도 불립니다.

한양관문길 주변의 민담, 설화
1. 수리산 찬우물 전설
찬우물은 수리산 줄기에 위치한 많은 우물 중에서도 그 수질이 가장 좋은 샘물입니다. 특히 그 수향이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천혜(天惠)의 특징입니다. 수리산의 지형은 호랑이가 누워 있는 형상인데, 찬우물은 그 가슴 부분에 해당된다고 하니, 그 물이 끊이지 않는 것은 호랑이의 젖줄이 끊이지 않음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가난한 부부가 살았는데, 산등성이 밭뙈기와 몇 마지기의 논에서 거두어들이는 약간의 곡식이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명해 오던 이들의 어려운 생업이 또 한 번 시련을 겪게 되었으니, 웬일인지 몇 해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폐농은 물론이고, 그나마 끼니를 이을 길마저 온데간데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다 못한 이들 부부는 마지막 남은 몇 알 곡식을 털어 음식을 마련하고 수리산 정상에 올라 며칠을 떠나지 않고 간곡히 빌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가 잠깐 졸았는데 꿈속에서 신령님이 나타나서, ‘그대의 논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우물을 파 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니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깬 부부는 너무나 신통하여 그 길로 산을 내려와 언덕배기 밭의 둔덕을 찾아 파 보니 과연 많은 샘물이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기뻐 정신없이 엎드려 감사 기도를 드린 이들은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라 생각하고 이곳을 보살피면서 이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아무리 가물어도 폐농하는 일이 없게 되었고, 인근에 소문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름에도 우물 주변에 얼음이 얼 정도로 물이 몹시 차고 마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안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시민들의 이용이 가장 많은 우물입니다.

2. 남태령 고개
서울서 한강을 건너, 노량진 나루에 이르고, 다시 흑석동(黑石洞)을 지나 강변을 끼고 한강을 바라보면서 동작동(銅雀洞) 이수교(梨水橋)를 우편으로 돌아가면, 승방 편(僧房坪) 석굴암에 이릅니다.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6km쯤 가면 큰 고개가 나옵니다. 이 고개가 바로 남태령(南泰嶺)입니다. 이 고개는 예전에 과천(果川)을 거쳐 수원(水原)으로 가던 옛길이었습니다. 또한 삼남(三南)으로 통하던 길이었고, 한때는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지극한 효성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묘소로 가시던 길이었습니다.
과천을 지나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물맛이 좋아 정조께서 가자(加資)로 당상(堂上) 벼슬을 제수(除授) 했다는 우물이 있고, 그 위 산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이는 정조가 세손(世孫)으로 있을 때 아버님이신 사도세자(思悼世子)가 할아버지에 의해 돌아가실 때 협력했다는 김상로(金尙魯, 1702-1766)의 형인 좌의정(左議政) 김약로(金若魯, 1694-1753)의 묘소입니다.
곡담을 쌓아 정승묘답게 모두 갖추어진 묘였지만, 정조께선 지난날의 아버님의 애절함을 생각하여 지나는 길 옆에 놓인 그 묘소조차 보기 싫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뒤 안양에 만안교(萬安橋)를 새로 놓고, 새 노정(路程)을 택하여 다니게 된 것이 이러한 연유에 나서였다고 합니다.
정조께서 과천에서 쉬어 가실 때, 과천의 옛 고을 이름을 따서 이곳 아헌(衙軒)인 동헌에 부림헌(富林軒), 내사(內舍)를 고요하고 편안하다 하여 온온사라 명명(命名)하고 친히 현판을 썼으니(정조 14년(1790) 2월 11일). 지금 까지도 그 현판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3. 새술막 마을
예로부터 삼남지방(三南地方: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서 한양을 가자면 지금의 수원을 지나 과천을 거쳐야면 되기 때문에 이 길이 유일한 통로였다고 합니다. 과거를 보러 올라오는 선비들 역시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길을 통하여 한양에 이르렀으며, 실패의 쓰라린 아픔을 안고 낙향하는 사람도 이곳 과천을 경유하여야 되었기에 과천은 한양의 관문이었습니다.
과천 관아(官衙)가 있었던 관문리(官門里)를 내점(內店)이라 하고 새술막 쪽을 외점(外店)이라 하였습니다. 외점 새술막은 내점을 오기 전에 들어 술과 음식을 찾는 이들이 많음으로 이들을 상대로 하여 도로변에 술집이 많아지면서부터 이곳을 새술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 한양관문길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는 것보다는 직접 두 발로 걸으면서 본다면 한양관문길이 이야기가 더 생생히 다가 오겠쥬?

한양관문길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스토리를 들려 드리며, 이만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다른 길도 기대해 주세욥!
스마트기자단
※ 본 글의 내용은 경기문화재단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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